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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Gerhard Appenzeller
“May He who on that day burst asunder the bars of death, break the bands that bind this people, and bring them to the light and liberty of God's children.”
“우리는 부활절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음의 철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K.M.C MISSION HISTORY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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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리교의 최초 공중예배
와
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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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에 세워진 정동제일교회
선교 초기 조선 정부가 외국인에게 의료 사업과 교육 사업 외에는 선교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펜젤러는 한국인에게 직접 복음을 전할 수 없었다. 1887년 2월 21일, 한국 국왕으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받았는데, 그는 이것을 선교를 허락한 것으로 판단하고 전도 활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 제자였던 박중상(1887. 7. 24)과 한용경(1887. 10. 2)이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
또한 1887년 10월 9일, '벧엘(Bethel, 하나님의 집)'에서 감리교의 첫 공중예배가 열렸다. 아펜젤러와 조선의 교인들이 사방 8평방미터가 되는 작은 방에 모여 드린 이 예배는 아펜젤러의 기도, 마가복음 1장 봉독, 그리고 '장씨' 형제의 폐회 기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아펜젤러는 예배를 마친 후 "나는 이곳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위대한 곳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하였다.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초기 교인들
1887년 10월 23일, 한국 감리교 최초의 성찬 예식이 열렸다. 이 성찬식에는 5명의 한국인과 선교사 스크랜튼이 참여하였다. 당시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한국 교인이 최소 5명이었고, 벧엘교회(훗날 정동제일교회)는 이들을 토대로 성장해 나갔다.
벧엘교회 교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아펜젤러는 1895년 8월 7일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9월에는 정초식을 가졌고, 1897년 12월 26일 봉헌 예배를 드렸다. 아펜젤러의 수고와 헌신이 이 예배당에 담겨 있으며, 그곳은 그의 기도처럼 한국 선교의 요람이 되었다.
"
아펜젤러
의
지역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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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웨슬리교회
아펜젤러는 평양(1887. 4. 13~5. 12, 1888년 봄), 의주(1888. 10), 충청도·원주·부산(1889. 8)으로 선교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선교 여행을 하면서 한국의 현실을 파악했고, 각 지역의 선교 가능성을 타진했다. 또한 가능성이 있는 곳에는 선교 기지를 세우고자 했다.
이와는 별도로 아펜젤러는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1885년 4월 약 1주일, 그리고 같은 해 6월 20일부터 7월 29일까지 38일을 제물포에 머물렀다. 그동안 그는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파악했고, 가족 예배이긴 하겠으나 한국에서의 첫 예배를 제물포에서 드렸을 것이다. 이곳의 경험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 그의 선교 정책에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제물포에 교회를 세우는 직접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1890년 노병일 씨가 6간의 회당을 건축하였고, 1891년 '제물포 웨슬리 기념교회'를 건축하였다. 그는 1891년 제물포 지역의 상주 책임자로 부임한 바 있다.
남산현교회
평양성과 대동강
아펜젤러는 1887년과 1888년 두 차례에 걸쳐 평양으로 여행을 하면서 한국의 현실을 목격하였다. 1차 여행 때, 그는 고양·파주·개성·평산·황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지날 때 빈곤한 농민들과 아버지의 빚 때문에 쫓겨난 아이들, 남자들에게 짓눌려 사는 여성들의 삶을 보았다. 그는 한국의 세민대중(細民大衆), 즉 "지극히 작은 자들"의 현실을 보려 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느꼈다. 여행을 마친 후 그는 "나는 주님께서 한 메시지를 전하라고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으로 안다. 영혼을 구하는 것, 나는 그것을 신실하게 전파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열매를 맺었다. 1892년 의료 선교사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을 선교사로 파견함으로써 평양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아펜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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