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의 회심과 한국 선교사 파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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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평생 주님께 봉사하는 것이다" |
1881년 2월 29일,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해외선교에 대한 강연을 들은 후 한 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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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독일계 개혁교회를 다니는 집안에서 태어난 아펜젤러는 1878년 프랭크린 마샬 |
대학(Franklin and Marshall Clooege)d에 입학했고, 1879년 4월 감리교에 입교했다. 그는 |
당시 "1876년 10월 1일 회심체험 이후 오랜 시간 감리교인들과 지내면서 개혁교회에서 |
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라고 하면서 이런 이유로 감리교에 입교했다고 했다. |
뉴저지주 에디슨(Madison)의 드루(Drew)신학교를 다니면서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
일본선교를 희망하였지만, 1881년 경 한국선교를 꿈꾸던 친구 워즈워즈가 뜻을 이루지 |
못하게 되자 선교지역을 한국으로 바꾸었다. |
1884년 12월 랭카스터 제일감리교회에서 엘라 닷지(Ella Dadge)와 결혼한 후 스크랜트 |
(W. B. Scranton)부부와 함께 1885년2월 3일 미국을 떠나 27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 |
다. 3월 31일 조선 선교회의 부감리사로 임명받은후 한국으로 떠난 그는 4월 2일 아내 닷지와 언더우드와 함께 부산을 거쳐 4월 5일에 제물 |
포에 도착했다. 그러나 갑신정변(1884년 12월)의 후유증으로 시국이 불안해 4월 13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6월 20일 아니와 함께 다시 제물포 |
에 도착한 그는 7월 29일 서울에 들어갈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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