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학당 시절의 소설책들
이화출신의 어머니들이나
배재학당출신의 아버지들은
맘이 얼마나 뿌듯하실까?
아펜젤러선교사님의 자녀들이 갖고 있던
노트와 만화인형들
늘 승리하기를 갈망하며 승리의 생활을 하신 분
먼 이국에 있는 우리나라를
찬란한 아침의 나라로 표현해주시고
빛과 자유를 주기 위한 여정과 배움을 통한
선교를 해주시고
그리하여 가난과 병과 무지 속에서
학교와 병원과 그리고 사랑으로 선교를 해주신
감사하신 선교사님
찬란한 아침의 나라로란 슬로건 아래
빛과 자유를 위한 여정은 시작되었고
그 시대 우리나란
얼마나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을텐데요
본국에 비하면요,
배우게 해주시고,
배움을 통해 선교활동을 펼치시며
신의 역사를 증거하셨군요.
대한민국 동방을 이렇게 표현해주신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교육을 통해 인재가 양성이 되었나봅니다,
참 감사한 순교자이십니다,
배움을 통한선교
섬김을 실천한 가족
그의 순교와 영생의 시간들
선교의 시작은 교육부터 인가보다
먼저 이렇게 끊임없이 교육을 통한 정신을 깨워서
수준을 높게 한 다음 신앙을 불어넣고
젤 먼저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그리고 고아원 양노원 이렇게 세우나 보다,
끊임없는 일기와 기도와 정진을 통해서
선교사님은 이렇게 먼저 차출한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을 하고 정신을 깨워서
각종 국내활동을 위해 준비해서 들어온 여권과
각종 자료들이 남김없이
배재학당 박물관에 구비 되어있습니다,
아펜젤러 가족들의 모든 관련된 자료들과 여권들
윌리암 아서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5년)은
배재학당 교사로 활동하다
1896년 평양으로 건너가
기독교 정착에 크게 공헌한 인물입니다.
그의 부인인 매티 윌콕스 노블(Mattie Wilcox Noble, 1872~1956년) 또한
배재학당 최초의 여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평양에서 여성 교육과 주일 학교에 헌신했습니다.
루스 노블 아펜젤러는
이들 부부의 맏딸로 1894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노블 가족의 한국 생활을 담은 일기,
윌리엄 아서 노블이 쓴 영문 소설 「이화」, 「순이」등이 있습니다,
루스 에밀리 노블의 생애
바로 아펜젤러부인과 가족들의 봉사와 희생과 섬김과
순교의 삶들
기독교 감리교회 정동교회의 산실 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입고 다니신 옷
이때 이 차림이신데
우리도 지금 이 양복 스탈이지 않나요?
역시 선두주자 이십니다,
1884(고종21년)
미국감리교 선교회에서 한국 선교사 임명을 받고
갓 결혼해서 1885년 초 한국에 와 한국 선교회를 창설하고
배제학당을 설립하였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쓰던 타자기와,
1884년에 들어온겁니다,
정말 빠른 문화였죠?
이 타자기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을까요?
배재학당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마치고 나오면서 사무실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