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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의 선교사들- 아펜젤러, 한국을 사랑한 한국인의 좋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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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08-29 22:20 조회 3,551 댓글 0
 

아펜젤러순직기념관 / 방문후기앨범

아펜젤러 선교사 가족 묘와 한국에 도착한 날의 첫 기도문
    양화진을 방문할 때 마다 묵상하는 것이 있습니다. 120년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우리 민족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조선말 근대화의 격변기에 선교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매일 저녁 우리 가족의 기도 시간에 양화진의 선교사를 한 사람씩 소개하고 있습니다. 블로그에도 계속 올리려고 합니다. 그 첫 시작으로 아펜젤러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의 약력입니다.

1885. 4.5 부활절 인천 도착
1887. 8.3 배재학당 설립
1888 말을타고 2,900km을 순회 전도여행
1895 정동교회 설립
1902.6.11 선박 침몰로 사망

성경번역 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에서 목포로 여행할 때 군산 앞바다에서  선박 충돌 사고로 침몰 중에 그는 안전하게 구출되었지만 아직 배에 있는 한국인 (그를 도와주던 조한규와 어린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다시 선실로 돌아갔고 23명과 함께  순교함.

1902.6.29 장례식에 애국가가 불리고 태극기가 게양됨.
'한국을 사랑한 한국인의 좋은 친구' 라는 소개를 받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고린도 전,후서 번역
출판사를 만들어서 독립협회 지원

 아펜젤러 선교사의 사역중 가장 훌륭한 것인 한옥 4채를 구입해서 한국 최초로 근대적 학교를 시작한 다음,  고종 황제에게 배재학당 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많은 사역을 선교지의 기본 질서를 존중하면서 진행했고, 선교지 현지인 중심으로 선교한 선교 전략의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그가 남긴 기록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내용을 소개합니다.
한국에 도착 후 5년만에 81kg에서 58kg으로 체중이 줄었다.
( 전국을 걸으면서, 혹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역시 체중 감량은 걷는 것이 최고^^)

한국 도착후 2년만에 한국어로 설교 시작했다.
(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계속 시도했습니다. 결국 완벽한 한국어를 사용합니다. 2년만에...)

 복음이 안방(An Pang)으로 들어간 것이 무척 기쁘다.
( 최초의 여성 세례자인 최씨 부인이 세례받은 것을 기록하면서 그가 남긴 말입니다.안방의 영어 표기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뛰어남을 알게 됩니다.)
win the campus, win the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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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스보다,죤 헨리,홍장빈@양화진 2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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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I & SMC@양화진,2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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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록사진@한국 초기의 기독교인,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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