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교로 출발해 고종황제로부터 '배재학당(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집)'
교명을 받았고, 교훈은 "欲爲大者 當爲人役"(크고자 하거는 남을 섬기라)
1885년 최초로 설립된 미션스쿨 배재학당에서 본인도 세례를 받았다.
한국최초의 감리교회(정동제일교회) 설립과 지역선교,
서울에서 교육과 의료사역을 주로 했지만 지방 선교여행도 자주 다녔다.
신약성경 번역과 묘축문답 등 문서선교를 위한 삼문출판사 설립,
아펜젤러의 문서선교는 주로 삼문출판사를 통해 이뤄졌다.
서재필, 이승만 등 배재학당 출신자들의 독립운동 기여,
'신교육의 발상지' 배재학당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성경번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항에서 목포로 배를 타고 가던 중
어청도 근해에서 일본선박 구마가와마루호(모형)와 기소가와마루호 충돌,
수영을 잘하던 아펜젤러는 혼자 살 수도 있었으나, 동행했던 조한규와
방학을 맞아 귀향하던 정신여고 학생을 구하려다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조선을 사랑했던 그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린 인간애'를 실천했다.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보는 어청도 전경
여기가 아펜젤러 순직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라고 한다.
해가 지는 마량진 포구는 한국최초(1816년) 성경전래지다.
석양에 해가 서서히 사라지고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다.
순교기념관 1층에 선교와 순교에 대해 기념하는 흔적을 남긴다.
여기에 방문한 이들이 잠깐만이라도 생각을 정리해보게 된다.
"복된 소식을 이 땅에 전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되새깁니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관을 지키고 계신 '동백정교회' 남광현 목사님,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서천군 서면 마량리 251-1), 방문안내 041-952-2224
순교 기념관은 당시 파선된 배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새로 지은 동백정교회와 예전교회도 아직 남아있다.
마량진 포구는 뜻깊게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로 의미가 깊다.
시신도 남기지 않은 '처음 선교사 아펜젤러'의 정신도 남아있다.
중국으로 가던 영국함선이 한국 서해안 탐사를 하고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전달,
1816년 영국 함선이 여기에 와서 성경을 전해줬다는 자리에 성역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성경전래 기념비' 바로 옆에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하늘이여, 바다여, 파도여, 님은 이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셨는데..."
비석의 뒷면에 아펜젤러 선교사의 약력이 기술되어 있다.
* 김석영 지음, '처음 선교사 아펜젤러'(도서출판 kmc, 2011) 참고
서해안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마량리 포구,
천연기념물(제169호) 동백나무숲이 있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의미있는 지역의 역사성이 잘 보존되어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